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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흥에 겨워 한 곡조, 시름 잊으려 한 곡조'

2022. 04.04(월) 14:42
[사진] '거문고 손님' (만화:서은경)
음률, 선비들을 위로하다
[스쿨iTV]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1일, “선비, 음률에 기대어 시름을 잊다.”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4월호를 발행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는 것을 매우 중시해, 유람 시 흥에 겨워 한시와 가곡을 지었고, 가객과 악사를 불러 풍류의 멋을 더했다. 이러한 풍류는 선비들이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음악에 마음을 기대어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었고, 벗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 4월호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이, 신분, 당색을 초월한
조선 셀럽들의 버스킹

황병기 교수의 [김용겸과 홍대용, 두 음악 대가의 수표교 거문고 협주]는 1776년 어느 겨울밤, 홍대용의 집에서 박지원, 김억 등 당대 지식인과 음악인들이 모여 합주하게 되었던 이 날의 풍경과 의의를 풀어냈다.

김용겸(金用謙, 1702~1789)은 정조 2년인 1778년 희정당(熙政堂)에서 정조와의 면대를 거쳐 11월에 장악원(예조에 속한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궁중과 국가 행사에서 모든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 제조로 임명되어 정조와 함께 예악 부흥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김용겸은 악기 연주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특히 거문고 타기를 무척 즐겼다.

어느 겨울밤에 김용겸이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집에 약속 없이 들렀다. 김용겸은 자유로운 지성의 소유자여서 홍대용보다 서른 살이나 많았지만, 둘 사이는 스스럼이 없었고, 친구처럼 지냈다.

이날 홍대용의 집에는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장악원의 금사(琴師)이자 가객(歌客)으로 유명한 풍무(風舞) 김억(金檍, 1746~?) 등이 모여 악기 합주를 하고 있었다. 김용겸이 그 집에 막 들어섰을 때 생황과 양금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 합주가 너무나 아름다워 김용겸은 쟁반을 두드리며 가락을 맞추고 '시경''벌목' 시를 노래로 읊었다.

이날의 풍경은 박지원의 '연암집'의 기록과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의 구술을 바탕으로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남아있다. 시간대가 정확히 서로 부합하지 않지만 대체로 1770년대의 어느 날로 기술되어 있다.

김용겸은 흥에 겨워 '벌목' 시를 읊고 즐기다가 소리 없이 자리를 떴고, 김용겸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깨닫고 급히 수표교로 향했다. 막 눈이 그쳐 달빛에 수표교가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고, 김용겸이 그 다리 위에 앉아 거문고를 무릎에 걸쳐 놓고 갓도 쓰지 않은 채 달빛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정취에 취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홍대용과 박지원 등은 술상과 악기를 수표교로 가지고 와서 연주하고 마시고 한바탕 즐긴 뒤에 헤어졌다. “조선 셀럽들의 버스킹”이라 할 만한 이 합주에는, 나이, 신분, 당색은 의미가 없었고, 오직 합주에 필요한 소리만 있었을 것이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격 없이 어울리고 교감할 수 있게 한다.

선인들의 일기에서도
음악 소리가 나는 듯하다

음악가 김용진 작가는 [불국사 아래 봄바람과 우쿨렐레]에서 봄날 불국사 아래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옛사람들의 일기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음악과 그 흥취를 떠올려본다.

김령(金玲, 1577~1641)은 조선 중기 예안(안동) 출신의 문신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처음에는 제자들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20여 년간은 문밖출입을 삼가며 오가는 사람도 방에 앉아 영접하고 보낼 정도로 철저히 은거하였다고 한다.

그의 일기인 '계암일록' 속 1621년의 일화를 보면 종의 처를 시켜 가곡(歌曲) ‘춘천불한(春天不寒)’을 부르게 했다고 적혀있다. 반주도 없이 겨울밤에 봄을 생각하면서 봄날은 얼마나 따뜻할까 그렇게 노래를 불렀을 것으로 작가는 상상한다.

“제나라에서 고전 음악을 듣고는 석 달 동안 심취해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모를 정도였다. 흥취에서 깨어나서 토로하기를 "음악의 세계가 이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차마 몰랐노라"라고 했다.”'논어' ('술이편' 7:13).

공자도 음악적 취향이 있어 선율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듯이 아마도 조선 시대 선비들은 최소한 음악 소양을 기르는 일을 맘껏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임재일기(臨齋日記)'는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가 기록한 생활일기로 그 속에는 길을 지나가다 들은 거문고 소리에 감탄하여 주인에게 음악을 청한 이야기도 남아있다.

시간도 흘렀고 음악도 변했겠지만, 그들처럼 연주하고, 그 음악에 취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여전하기에, 글을 통해서도 지금 우리가 옛사람과 어울리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외로움에 힘겨울 때
음악의 힘으로 낯선 이들과 교감

서은경 작가의 [스토리웹툰 - 거문고 손님]에서는 꽤 시간이 흘렀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던 노상추가 변방 근무 중 우연히 찾아온 거문고 연주자의 음악을 통해 시름을 극복한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속 이야기를 웹툰으로 소개한다.

변방인 함경남도 갑산에서 근무한 지 2년이 넘었으나 사람도, 음식도 여전히 낯설고 투박하여 추천을 받아 기생들과 유람에 나서도 그 마음이 풀어지지 못했다. 어느 날 남쪽에서 온 거문고 연주자인 이춘화가 와서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고, 책방의 황윤언, 병이나 누워있던 행영 비장 이상정, 동인보에서 온 권관 윤홍심도 사흘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흥이 오른 사람들이 이춘화와 기생들을 데리고 북승루에 올라 거문고 타는 음에 맞춰 춤과 노래를 즐겼다. 비로소 북방에도 봄이 왔음을 느낀 노상추였다. 낯설었던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통해 어울리고 교감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래가 추억이고,
추억 속에 노래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 - 당신을 키운 8할의 무엇]에서 그 무엇이 음악일지 모른다고 말하며, 미디어에 소개된 옛사람들 삶 속의 음악을 전한다. 누구나 특정 음악을 들으면 지난 시절이 함께 떠오르기도 하고 그 반대로 추억을 떠올리면 음악이 튀어 나오는게 삶의 일부라 한다.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악 그 자체를 다루는 일은 흔치 않다. 그나마 판소리를 다룬 영화로는 <서편제>, <도리화가>, <소리꾼> 등이 있으나, 그 밖의 음악을 다룬 콘텐츠는 찾기 힘들었다. 판소리가 아닌 다른 음악을 다룬 영화는 2016년 개봉한 <해어화>다. <해어화>에는 ‘정가’가 등장한다. 백성들이 즐긴 음악이 민요와 판소리였다면, 선비들이 즐긴 시조, 가사, 가곡창 등을 ‘정가’라고 한다.

1943년, 경성 대성권번의 마지막 기생 소율과 연희를 중심으로 ‘조선의 마음’이라는 곡을 부르기 위한 두 여인의 사랑과 열망, 질투를 다루고 있다. 소율은 미모와 예인으로서의 재능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며 특히 정가를 잘 부른다. 소율의 둘도 없는 친구인 연희 역시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당시 조선에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악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율과 연희 역시 대중가수인 이난영을 동경하며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듣곤 했는데, 작곡가 윤우의 주선으로 이난영을 만나게 된다. 소율이 이난영에게 팬이라 고백하자 이난영은, 자신은 오히려 정가를 무척 좋아한다며 소율에게 정가를 청해 듣는다. 삼각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질투심에 괴로워하던 주인공 소율이 결국 연희를 배신하며, ‘예인’의 길을 버리고 일본 관리에게 몸을 파는 창기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정가’를 버리고 ‘대중가요’를 선택한 행위가 바로 그 상징이었다. 영화에서 ‘정가’는 소율의 순수함과 동시에 조선의 마음 그 자체였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후원에 배를 띄워놓고 정가를 향유하는 모습은 당시 권세가의 힘을 상징한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연주하거나, 악공과 창기(倡妓)들을 몰고 다니며 연주해야 했으니,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작가는 양반이라고 정가만, 백성이라고 속가만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현대인의 인생에 대중가요와 재즈, 클래식과 사물놀이, 판소리와 K-POP이 공존하는 것처럼 과거 우리 민족들도 시름을 잊게 해주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부르고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을 밝힌다. 앞으로는 더욱 풍성한 음악 세계를 다룬 콘텐츠가 나오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함께 전한다.

[사진] 영화〈해어화〉, 2015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답청일기]에서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들판을 지나 산에 놀러가는 답청(踏靑)을 하던 중 술에 취한 정생이 꿈에서 다산 정약용을 만나 주고받은 '시경'과 관련하여 풍속화 느낌의 소설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홍복산 계곡에 있는 백석정에 양주 백석골의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모두 모였다. 마을의 제일 큰 집으로 여기는 가문의 배첨지가 기생과 악공을 불렀다. 주빈들보다 기생이 더 늦게 도착해 언짢았던 배첨지는 정생은 절창이라고 생각했던 기생의 시조창에 느려터진 데다 시원하게 소리를 뽑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고, 정생이 듣기엔 소리를 질러댈 뿐인 춘향가를 듣더니 만족스러워했다. 정생이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배 첨지가 인상을 쓰면 같이 인상을 쓰고, 배 첨지가 웃으면 같이 웃을 뿐 누구도 노래를 즐기지 않았다. 연거푸 술을 마신 정생은 깜박 잠이 들었고, 꿈에서 다산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음악으로 예를 바로 세울 수 있는데 그에 맞는 참된 음악이 사라졌다 한탄하는 다산 선생. 그에게 정생은 『시경』을 언급하면서 노래로 덕성을 함양할 수도 있으며, 세상을 풍자할 수 있다고, 또한 '시경'의 원뜻을 생각한다면, 중국에 맞출 것이 아니라 조선의 노래를 존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생은 잠에서 깬 후에야 정약용의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하던 자신의 의견이 홍대용의 '담헌서(湛軒書)'에 담긴 의견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서는 16세기 초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중 무오사화 이후의 시대상이 어지러울 것을 예견하고 낙향하여 영귀정(詠歸亭)을 지어 노래로 근심을 잊은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1468~1563)의 삶을 소개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4호인 영귀정의 ‘영귀(詠歸)’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노래를 읊조리며 돌아오는” 뜻이다. 김광수는 영귀정에서 소소한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면서, 나라와 자신에 대한 근심을 잠시 잊었다고 전해진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조경란 박사는 2년 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5부 대본을 쓰고 있던 작가에게 두 주인공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알려줄 때 '시경(詩經)'을 중시했던 정조 임금님이 떠올라, '시경'의 '북풍(北風)'이란 시를 두 사람이 마음을 담아 번갈아 가며 암송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차이에서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음악이기에,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교감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이와 같은 어울림과 교감으로 갈등과 전쟁이 멈춰지길, 그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에는 기록 자료를 문화예술 기획 ·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 일기류 250권을 기반으로 한 6,71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권광혁 기자 hyun@school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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